강구룡, 글자가 잃어버린 목소리를 담다
‘힘’과 ‘물’이라는 단어에서 ‘수직’과 ‘수평’의 이미지를 상상해 내는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글자와 이미지를 결합한 작업을 단순히 좋아함을 넘어 편애한다고 말하는 디자이너 강구룡. 그를 국립한글박물관에서 만났습니다. 3층 전시관에는 강구룡 디자이너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특별전 <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이 한창이었습니다.
아트디렉터, 강구룡
강구룡 디자이너는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개인 작업부터 상업 프로젝트, 그리고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모든 작업의 출발점은 글자와 이미지입니다. “타이포그래피의 매력이요? 익숙한 글자를 익숙하지 않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강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타이포그래피에 빠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래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대학 재학시절 은사이신 성재혁 디자이너로 인해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글자가 쓰는 도구가 아니라 표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배우게 되었죠.”
이후 그는 일러스트레이션, GUI, UX 디자인, 광고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글자와 이미지를 활용하여 대중에 짧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포스터 작업을 가장 편애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강 디자이너는 3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 <청춘>를 창업,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글자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포스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자가 잃어버린 목소리를 복원하는 일, 타이포그래피
글자는 모두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강 디자이너는 “글자가 목소리나 질감을 가지게 되면 이미지처럼 성격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타이포그래피는 글자가 잃어버린 목소리를 복원하는 도구입니다.
대표적인 타이포그래피 작업이 <한글 서체의 원형과 계보>입니다. 한글 ‘ㅎ’자음이 발음할 때 퍼지는 소리의 관례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한글 서체의 원형과 계보 <Hangul Fonts Original Form and Pedigree, 2015>
윤디자인 연구소 세미나 포스터. 한글 ‘ㅎ’자음이 발음할 때 퍼지는 소리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표현.
이 작업은 그에게 매우 특별합니다. 글자의 소리를 이미지로 전환해 입체적으로 해석하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작품으로 TDC(Type Directors Club) 어워드에서 수상하는 등 해외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한글 자체가 서양에서 봤을 때 독특한 요소로 여겨진 것 같습니다. 또 글자에 소리의 이미지가 더해질 때 어떤 형태가 갖게 될 지에 대한 여러 고민들도 좋게 평가해 준 것이죠.”
피치 블로섬으로 만개하다
그는 2016 런던디자인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UTOPIA by design을 주제로 7명이 한 팀을 이루어 미래의 이상적인 사회를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저희는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고정된 모습을 제시하기 보다는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져 생각을 텍스트로 그리고 다시 이미지로 변환해 이를 기록하고 찾아볼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로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서양의 알파벳과 동양의 전통 문양을 이용해 동서양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유토피아 폰트를 개발하여, 관람객의 생각을 저마다의 패턴으로 기록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작품이 피치 블로섬<Peach Blossom>입니다. 피치 블로섬은 은유적인 표현으로,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나와있는 복숭아 꽃이 핀 이상향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피치 블로섬 < Peach Blossom, 2016>
UTOPIA by design을 주제로 제작한 디지털 미디어 프로젝트. 서양의 알파벳과 동양의 전통 문양을 이용해 유토피아 폰트를 개발했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꼬박 1년이란 시간이 걸린 쉽지 않는 작업이었습니다. 7명의 팀원들이 국내외에 모두 흩어져 있어 소통도 쉽지 않았고, 게다가 한국을 대표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상당히 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작업의 시작, 키워드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강 디자이너가 가장 처음 하는 작업은 ‘키워드 찾기’입니다.
“작업 컨셉을 정하는 데 필요한 핵심 단어를 얻기까지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키워드가 찾아지면 다시 그 뜻을 여러 방향으로 해석합니다. 사전을 찾아서 일반적인 뜻을 보거나 그 과정에서 제가 잊고 있던 뜻이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또 사람들과 대화 속에서 그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추적합니다.”
힘, 물 <Power & Water, 2016>
‘힘’이 가진 수직 구조와 ‘물’이 가진 수평 구조를 이용하여, 글자의 의미와 이미지를 조합한 새로운 형태의 글자를 만들었다.
그 후에 그는 찾은 키워드를 소리의 증폭된 이미지와 결합하여 A4용지 위에 스케치하고 구체화시킵니다. 이후 Adobe Illustrator를 통해 글자의 소리를 이미지로 확대하거나 축소하며, 스케치로 표현하지 못하는 기술적인 부분들을 표현합니다.
“물론 이런 프로세스가 정확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모든 과정이 복합적으로 진행이 될 수도 있고 단계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반복 속에서 결국 하나의 고정된 형태를 뽑아낼 수 있습니다.”
자만에 빠지지 않는 법, 거리 두기
강 디자이너가 가장 경계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자만에 빠지는 일입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업하는 단계마다 ‘내가 너무 작위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닌가’라고 저를 객관화합니다. 저는 이것을 ‘거리 두기’라고 말합니다.“
태, 백 <TAE, BAEK, 2015>
태백시 그래픽디자인전시회 포스터, 태백(太白)의 한자에서 착안해 디자인했다.
그에게 ‘거리두기’는 주관적인 것들을 객관적인 수단으로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가령 사전에서 찾거나, 주위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평균치를 얻어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산책을 통해 작품에서 멀어지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작품에 깊이 몰두하다 보면 생각의 범위가 좁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첨단 IT 기술 시대의 크리에이티브
Illustrator와 같은 소프트웨어는 강 디자이너에게 작업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생각의 확장’이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열린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인간의 영역에 기술이 적극적으로 들어온 대표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홍범 <Hong Buhm, 2017>, NEW 2017 <NEW 2017>
강구룡 디자이너의 최근 작품
그날 이후 그는 ‘디자이너로서 계속 생존하기 위해서는 크리에이티브의 또 다른 범주가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포스터는 오래된 매체지만 앞으로 가상현실이나 디지털 미디어에도 상징적인 이미지로 끊임없이 소비될 겁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작품보다 길바닥에 찢어진 포스터가 사람들에겐 더 가까이 있으니까요.”
강 디자이너는 바랍니다. 자신이 고민하고 표현한 글자와 이미지의 결합이 포스터로 대중이 폭발적으로 소비하고 변형하면 좋겠다고.
강구룡 그래픽 디자이너는 **Adobe Create Magazine**에서 영문 기사로도 소개되었습니다. **여기**를 통해 확인해 보십시오.
강구룡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은 그의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통해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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