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없던 새로운 과거가 온다 – ‘뉴트로’ 트렌드와 뉴트로 마케팅
지난해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2018)>는 국내는 물론 전세계를 ‘퀸 앓이’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퀸(Queen)은 70~80년대에 전세계를 휩쓸었던 영국의 록 그룹이지만, CGV에 따르면 영화의 국내 관객층은 퀸의 음악을 듣고 자라지 않은 20대가 30% 비율로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통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레트로 열풍에서 미묘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되는데요. 무엇이 퀸을 알지 못하는 ‘퀸알못’ 20대를 이토록 열광케 한 것일까요?
과거에 대한 경험과 추억을 바탕으로 이를 재현하는 복고 트렌드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현상이지만, 특히 요즘의 밀레니얼 세대를 움직이게 하는 새로운 레트로 열풍을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는 ‘뉴트로(New-tro)’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오늘날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레트로 열풍인 뉴트로 트렌드를 소개하고, 뉴트로 마케팅의 접근법을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밀레니얼 세대, 나아가 Z 세대까지 움직이게 할 뉴트로 마케팅 방법에 대한 인사이트도 얻어 보세요.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레트로 열풍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복고 열풍은 우리 주변에서도 상품, 장소, 문화 콘텐츠 등 다양한 형태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과거와 똑같은 디자인으로 재출시되어 현대 젊은 층에게도 사랑받는 제품들이 있죠. 일례로, 중장년층을 위한 브랜드로 인식되던 스포츠 의류 브랜드 휠라(FILA)가 최근 몇 년 사이에 10~20대가 열광하는 브랜드가 되었는데요. 열풍의 중심에는 20년 전의 디자인을 재출시한 ‘디스럽터2(Disruptor 2)’ 제품이 있습니다. 이 제품은 미국 슈즈 전문 미디어인 풋웨어뉴스(Footwear News)에서 선정한 ‘2018 올해의 신발’로 소개 되기도 했는데요. 휠라 특유의 투박한 복고풍 디자인이 2018년 신발 업계를 강타한 ‘어글리 슈즈’라는 최신 트렌드를 적중했고, 그 결과 전 세계 스트리트 패션의 ‘잇’ 아이템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독특한 레트로 감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휠라(FILA)의 디스럽터 2 (사진출처: 휠라 웹사이트)>
무형의 공간이나 장소에서도 레트로 트렌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가 구제 시장에 방문해 낡은 옷을 구매하고, 익선동이나 을지로의 좁은 골목에 있는 오래된 카페와 식당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떠오르는 현상 모두 레트로의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복고 컨셉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뿐만 아니라 실제 물리적으로도 움직이게 한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영화, 음악, 예술 등 문화 콘텐츠 마케팅에서도 레트로 컨셉이 자주 발견됩니다. 넷플릭스(Netflix)의 대표작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역시 <이티(E.T., 1982)>와 <X파일(X-Files, 1998)>같은 클래식 공상과학스릴러의 컨셉을 오마주하여, 시대적 배경부터 음악, 이미지, 모두 비슷하게 풀어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다만, 레트로 감성을 자극함과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덧입혀 더욱 주목받았고, 미국 대표 노스탤지아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레트로의 진화, 뉴트로(New-tro)
과거에 대해 동경이나 그리움을 품게 되는 태도는 인간의 행동 심리에 대한 연구에서도 증명된 만큼, 복고 트렌드가 지속적으로 다시 발생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존의 복고 트렌드가 이미 과거를 경험해본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그들의 향수와 그리움을 자극하며 과거 콘텐츠를 재소비하는 것에 그쳤다면,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현재의 새로운 레트로 열풍, 즉 ‘뉴트로(New-tro)’는 과거를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가 과거에서 발견한 매력 요소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레트로에서 발견하는 대표적인 매력 요소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신선함’인데요. 쉽게 예를 들면, 20-30년 전에 유행했을 법한 복고풍의 디자인이 그 시대를 살지 못한 현재의 젊은 층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것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죠. 퀸을 경험한 40대 이후 세대보다 20대가 <보헤미안 랩소디>에 더 열광한 것 역시 새로움에 대한 이끌림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일상의 리듬으로 인해 모든 것에 쉽게 싫증을 내며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젊은 세대에게, 옛 것이 주는 신선함은 매력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옛 것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 역시 뉴트로 트렌드의 원인 중 하나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밀레니얼 세대들은 완벽하고 화려한 현재의 모습보다 옛 것 특유의 낡음, 불편함, 불완전성에서 오히려 더 정신적인 만족감과 안온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용하기 조금 불편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못난 생김새를 가진 과거의 물건들이 트렌드에 민감하고 디지털 디바이스에 익숙한 젊은 층에게도 새로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뉴트로 마케팅, 어떤 새로운 경험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킬 것인가
마케터의 입장에서 이러한 뉴트로 트렌드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앞서 언급한 뉴트로 현상의 특징처럼, 뉴트로 마케팅은 단순히 옛 것을 가져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밀레니얼과 그 이후의 Z세대를 타깃으로 하기 위해선 현재에 맞는 해석으로 새로운 소비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뉴트로 마케팅 전략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과거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죠. 뉴트로 마케팅에도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 사례로 분류하여 소개해 보겠습니다.
발전된 기술로 과거를 업그레이드하다
<전세계적으로 1,000만 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닌텐도의 레트로 게임기 (사진 출처: 닌텐도 웹사이트) >
먼저 현대 기술에 맞춰 과거의 상품을 업그레이드한 예시로, 닌텐도(Nintendo)의 게임기 ‘닌텐도 클래식 미니(Nintendo Classic Mini NES)’를 살펴보겠습니다. 닌텐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비디오 게임 기업 중 하나로, 포켓몬스터와 마리오 시리즈 등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제작한 곳입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인만큼 닌텐도의 레트로 게임에 대한 마니아 고객층도 있을 정도였는데요. 이런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해 약 30년 전에 처음 출시했던 게임기와 게임을 최근에 다시 선보였고, 이는 게임 팬들 사이에서 레트로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닌텐도는 게임 콘솔 디자인과 게임 프로그램 모두 과거의 느낌 그대로 유지하되, USB 전원 케이블과 HDMI 케이블을 이용해 동작하도록 제품을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추억의 게임에 대한 경험은 최대한 유지하되 현대의 기술을 더해 새로운 경험을 창출한 것이죠. 그 결과 ‘닌텐도 클래식 미니’는 지난 해 9월 말까지 전세계적으로 1,000만 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할 정도로 기업의 효자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
새 것에 과거의 향수를 뿌리다 – ‘뉴’스탤지어
<필름 카메라처럼 뷰파인더와 필름 수가 나타나는 구닥 카메라 애플리케이션 (사진 출처: CNET) >
뉴트로 마케팅의 또 다른 접근법은 완전히 새로운 제품에 과거의 향수를 더하는 것입니다. 새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느낌을 주는 마케팅 방식으로, 이를 ‘뉴스탤지어(Newstalgia, 새로움을 뜻하는 New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뜻하는 Nostalgia의 합성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뉴스탤지아를 쉽게 이해하려면 디지털로 찍은 사진에 낡은 사진과 같은 효과를 넣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트렌드를 이끄는 여러 아이돌 스타들의 인스타그램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사진들이죠.
이러한 뉴스탤지어 현상을 활용하여 실제 옛날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같은 애플리케이션도 개발되었습니다. 출시 2개월 만에 130만 유저를 돌파하고, 33개국에서 앱스토어 카테고리 1위를 차지한 구닥(Gudak)이 한 예인데요. 구닥 앱을 열면 필름 카메라의 작은 뷰파인더로 들여다보듯 화면이 가려져 있고, 한 통의 필름을 사용하듯 24장을 촬영하고 3일을 기다려야만 내 사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닥과 비슷한 후지캠(Huji Cam)의 경우 필름 사진을 인화하는 과정에서 빛이 들어갔을 때 생기는 효과가 무작위로 나타나는데, 실제 사진에서 얼굴을 가려지더라도 옛 감성을 되살려주는 매력 덕분에 소셜 네트워크상에서 바이럴될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촬영된 결과물을 보면 더 사진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찍을 때도 더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게 되어 그 순간이 보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필름 카메라가 주는 약간의 불편함과 불완전성이라는 사용자 경험이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과거에 대한 매력으로 해석되고, 또한 새롭고 재미있는 놀이이자 ‘힙’한 문화로도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손끝의 터치 한 번으로 원하는 것을 보고 얻을 수 있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되려 피로와 결핍을 느끼기도 합니다. 지금 사는 사회가 빠르고 발전된 기술을 제공하기 때문에,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옛 것에서 얻는 아날로그 감성이 더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지요. 마케터들은 이러한 뉴트로 트렌드 속에 담긴 소비자 정서를 잘 이해하고, 이를 어떠한 새로운 경험과 결합해 밀레니얼 세대, 나아가 Z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