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러지를 통해 ‘오감’을 열다, 미디어아트 스튜디오 사일로랩(SILO Lab)

지금은 바야흐로 ‘몰입형 예술(Immersive art)’의 시대입니다. 몰입형 예술이란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존재하던 벽을 허물고 작품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인터랙티브 설치 미술의 한 분야를 말하죠. ‘자연’을 모티브로 사색적 공간을 연출해 내는 사일로랩(SILO Lab)은 자유자재로 ‘몰입형 예술’의 마법을 부리는 팀입니다. 수백 개의 풍등이 물에 반사되며 공간을 부유하는 대표작 ‘풍화’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잔잔해지는 치유의 시간을 선사하죠. 풍등의 움직임을 이끄는 섬세한 사운드, 공간에 감도는 향,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연출된 물 위의 작은 다리까지, 오감을 열고 작품에 빠질 수 있게 하는 요소 역시 다분합니다. 충남 논산의 연산 문화창고에서 기획 전시 ‘다시 봄, 다시ː봄’을 열고 있는 사일로랩을 만나 ‘기술’과 ‘예술’의 아름다운 접점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들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우선 팀 소개를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사일로랩의 박근호, 이영호입니다. 저희는 공학, 디자인, 영상을 베이스로 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모여 설립한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스튜디오입니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들에게 몰입형 경험(Immersive Experience)을 제공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작품의 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아이디어 착안 단계에서부터 설치의 마무리까지, 한 작품을 예로 들어 그 과정을 조금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감정을 비주얼로 만들어낸다면, 이 작업이 어떤 형태여야 하며 어떤 공간에 놓일지를 많이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더운 느낌을 표현한다면, 물방울이 가득하거나 밝고 뜨거운 빛이 가득 찬 공간을 그려보는 거죠. 최근 전시한 작품 ‘윤슬(빛이 물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을 나타내는 순우리말)’(2021)의 경우 멍하니 앉아서 머릿속의 생각을 하나씩 비워내는 감정을 떠올리며 제작한 작품입니다. 관객분들이 작품을 보는 짧은 시간이나마 모든 걸 잊고 위로와 쉼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히 미디어 아트 작품을 보고 감동을 느껴본 경험이 있다면요?

미디어 아트 작업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해야 하고 다양한 장비도 필요합니다. 저희 역시 처음부터 ‘사일로랩’이라는 이름으로 미디어아트 작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고, 각자 일을 하다가 사무실을 함께 쓰며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많은 장비를 사용하고 싶어서 커머셜 작업을 하게 됐고, 커머셜 작업에서 얻은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저희만의 작업물을 하나 둘 만들면서 미디어 아트 작업을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압도적인 감동을 느껴본 작품은 일본 나오시마 섬에 있는 지추 미술관(Chichu Art Museum)에서였는데요. 그중 특히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하시는 만큼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Adobe Creative Cloud)의 다양한 툴을 필수적으로 사용하실 텐데요. 두 분이 처음으로 어도비 프로그램을 사용하신 게 언제인가요? 또 그 당시의 경험과 툴 사용 능력이 작업과 커리어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박근호 : 미디어 관련 대학교를 다니다 보니 미디어를 다루는 툴에는 항상 친숙했었어요. 대학교 재학 중엔 모션 그래픽 영상물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 VDAS(Visual Design & Art School)라는 관련 학원도 다녔고, 그러면서 어도비 애프터 이펙트(Adobe After Effects)를 많이 다루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콘서트 무대 영상을 제작하고 오퍼레이션 하는 브이제잉(VJing)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영상에 이펙트를 주는 작업을 하다 보니 실시간 비주얼라이제이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의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영호 :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컴퓨터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당시 집에 컴퓨터가 없어 컴퓨터 있는 친구 집에 일부러 놀러 가곤 했어요. 그러면서 여러 게임이나 유틸리티 프로그램을 접하던 중 포토샵 3.0을 써보면서 그래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메뉴를 한 번씩 다 눌러보면서 어떤 기능이구나 추측하고 메뉴 위치를 외워서 어도비 포토샵(Adobe Photoshop) 기능을 익혔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포토샵 5.0, 5.5,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 책을 구매해서 좀 더 제대로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나구요. 이렇게 예전부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써왔던 터라 소위 ‘나는 디자인을 잘해’라는 착각을 하고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학년쯤 되었을 때야 비로소 주변의 잘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디자인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툴을 잘 다루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이를 계기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닌,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에 더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작업을 할 때 어도비의 각종 툴들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궁금합니다.

어도비는 디자인 툴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툴이다 보니 앞서 언급했던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 애프터 이펙트와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Adobe Premiere Pro), 어도비 인디자인(Adobe Indesign)까지 대부분의 툴을 사용하게 됩니다. 너무 기본적인 툴이다 보니 오히려 어떻게 활용하는지 설명드리기가 생각보다 어렵네요. 머리속에 있는 이미지, 아트웍을 꺼낼 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툴이라고 말씀드리는 게 가장 적당할 것 같네요.

그간의 작품들 중 커머셜 작품은 굉장히 테크니컬하고 화려한 반면, 미디어 설치 작품들은 굉장히 명상적이며 차분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이나 빛의 물성을 전시장에 끌어들이거나, 일명 ‘물멍’이나 ‘불멍’처럼 휴식의 시간을 선사한다는 점도 인상적이고요. 두 가지 카테고리의 작업 중, 무엇이 사일로랩의 정서와 더 밀접한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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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화려하고 디지털적인 커머셜 작업을 계속 하다 보니 반대로 저희 작업의 경우 상업적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합니다. 저희 작업은 주로 물성으로 공간을 채웁니다. 물 효과를 내기 위해서 물 영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진짜 물을 가져오거나, 따스한 빛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저희가 빛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 거기에 맞는 기술을 적용하는 식이죠. 하지만 외연에 있어서는 최대한 기술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형태를 추구합니다. 두 분야 모두 저희의 모습이지만, 지금은 순수 작업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음악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음악을 즐기고 안다는 것은 미디어 작업에도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요즘 꽂혀 있는 음악이나 관련된 영상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미디어 작업에서 사운드는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희는 주로 이전에 합을 맞췄던 사운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저희가 내고자 하는 색을 찾아가는 편이에요. 음악은 트렌드에 맞춰서 다양하게 듣는 편인데요. 제가 예전부터 동경했던 뮤지션인 비요크(Bjork)나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 그리고 빌리 아일리시 (Billie Eilish)와 같이 예술적인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해 보는 상상을 해보기도 해요. 이런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 셋업이나 무대 디자인에 우리가 아트 피스적인 요소를 추가하는 협업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인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해 가고 있는 최신 기술이나 트렌드를 리서치하고 습득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기술은 어떤 것인가요?

디지털이 갖고 있는 특유의 차가움을 어떻게 하면 따뜻하게 풀어낼 것인가가 늘 가장 큰 고민이자 과제입니다. 고도화된 기술을 사용하되, 기술이 드러나지 않고 공간과 완벽하게 일치되는 작품을 기획하면서 기술적인 면과 트렌드를 계속해서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요즘 가장 주목하고 있는 크리에이터가 있다면요?

각 분야, 혹은 스타일에 따라 어떤 크리에이터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지에 관심이 많고, 두루 알고 싶어 리서치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특정 크리에이터보다는 최근 디즈니 플러스에서 시청한 다큐멘터리 ‘이매지니어링(imagineering)’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가 요즘 가장 고민하는 이미지, 기술, 공간, 위트 등 다양한 키워드에 있어서 두루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는 요즘 크리에이티브 업계, 예술 업계에서 가장 수요가 많고 인기가 있는 만큼 경쟁도 가장 치열할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저희가 생각할 땐, 경쟁이 치열한 만큼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도전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작업을 자유롭게 펼쳐내며 수익까지 발생시킨다는 게 아직은 쉽지 않은 부분이 있거든요. 새로운 작업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창작의 고통이 뒤따르는 것 같아요. 결과가 유일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저희 역시 압박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작업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둘씩 해냈을 때 분명 역량이 늘어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작업을 하나씩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 저희가 하는 가장 큰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단독 전시를 준비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이 전시의 큰 그림이 무엇이고, 어떤 작품을 어디서 만나볼 수 있는지 조금만 알려주실 수 있나요?

올해 6월 중, 경기도 양평에 새로 개관하는 미술관에서 사일로랩의 단독 전시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계속 바뀌고 있긴 하지만 약 5~6점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고, 저희 작품이 온전히 공간을 채우는 형식이 될 거예요. 기존의 ‘잔별’ 작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신작으로 채워질 예정입니다. 빛과 공간, 그리고 사운드가 어우러진 작품들로 일상에서 자주 접하기 힘든 아름다운 풍경들이 연출될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사일로랩이 2022년에 세운 목표와 계획, 그리고 꿈은 무엇인가요?

올해는 위에서 언급한 전시를 통해 아트 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연말에는 좀 더 크고, 독자적인 공간에서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현실적인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꿈이 있다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고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작품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