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폰트 – AG 최정호 스크린

안녕하세요 매달 폰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이달의 폰트’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폰트는 ‘AG 최정호 스크린’으로 역사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서체입니다.

최정호(1916~1988)

10월 9일은 아시는 것처럼 한글날입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고 반포했다는 사실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글 폰트 디자인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이번 달에 소개해드릴 폰트는 이 물음에 답을 드릴, 'AG 최정호 스크린' 입니다. 편집 디자인이나 폰트를 많이 다루시는 분들께서는 이 분의 성함을 들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폰트 이름에 성함이 포함되어있는 만큼, 인물 소개 없이는 이 폰트를 설명하기가 어려우니 먼저 이 분에 대한 소개로 시작하겠습니다.

최정호 선생은 1세대 한글 글꼴 디자이너 로서 한글 글꼴의 기틀을 다진 분입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바탕체'와 '돋움체', '굴림체', '궁서체' 등의 원형이 이 분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옛 글자니 예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오히려 지금과 별반다르지 않은 디자인에 놀라실 것입니다. 생전 디자인하신 활자 원도를 함께 보시죠.

모리사와사 원도 중명조/활자체, 1972/1979, 모리사와사 소장 (이미지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홈페이지)

이토록 완성도 높은 원도를 제작하신 덕분에 돌아가신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원도는 한글 글꼴의 원형이자 바탕이 되며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아래 최정호 선생이 그린 원도를 바탕으로 디지털 글꼴로 다시 태어난 대표적인 글꼴들은 SM중명조, SM신명조, 윤명조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의 이름이 들어간, AG 최정호체와 AG 최정호 스크린체도 포함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글 글꼴사에 엄청난 발자취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AG 최정호체 이전까지는 최정호 선생의 이름 을 딴 글꼴이 없었습니다. 이전에 작업한 서체들의 이름은 보통 의뢰한 회사들의 이름을 따 '동아출판사체', '모리사와 중명조' 등으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AG 최정호체는 최정호 선생의 마지막 원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글꼴이며, 이 원도는 '안상수' 타입 디자이너(안그라픽스 설립자)의 의뢰로 제작되었습니다. 아래는 최정호체의 원도입니다.

최정호체 원도, 1988, Ag안그라픽스 소장 (이미지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홈페이지)

최정호 선생이 원도를 그릴 당시에는 디지털 폰트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처럼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도 최정호의 원도들은 한글 글꼴의 디자인 가이드가 되어주었습니다.

바탕체 스타일만이 아니라 최정호 선생의 돋움체 디자인 원도를 바탕으로 한 폰트들도 마찬가지로 성공적으로 디지털 전환되었으며, 대표적인 예시로 '초특태고딕' 등이 있습니다.

AG 최정호체와 AG 최정호 스크린체

앞서 최정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으니 이제 오늘의 주인공 AG 최정호 스크린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AG 최정호 스크린체는 AG 최정호체를 스크린에서 보기에 적합하도록 다듬은 폰트 입니다. AG 최정호체는 아쉽게도 아직은 어도비 폰트 라이브러리에 수록되어있지 않습니다.

AG 최정호체와 AG 최정호 스크린체의 차이를 파악하기 위해 나란히 비교해보겠습니다.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 AG 최정호체 소개 페이지 내 예시 문구 (링크)

AG 최정호 스크린체로 같은 문구를 인디자인에서 작성한 예

위가 AG 최정호체, 아래가 AG 최정호 스크린체입니다.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ᄋ(이응)입니다. 최정호 스크린체에서의 이응은 상투가 없어졌으며, 속공간의 넓이가 넓어졌습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획 굵기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더 진하고 글자의 모든 부분이 또렷해보입니다. 스크린에서 읽을 때 글자의 모든 부분을 독자가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느낌이 듭니다.

기존의 최정호체에 비하면 글자 내 강약 리듬이 줄어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으나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빠르게 본문을 읽어나가는 와중에 글자의 모든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읽어낼 수 있으니 장단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스크린에서 보는 디자인을 하고 계시는 중이라면, 장인의 힘을 빌려 디자인을 완성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 당장 사용하시지 않으시더라도 AG 최정호 스크린체는 꼭 한 번 찬찬히 살펴보시면서 그 디자인을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도 아름다운 글꼴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