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에게 추억의 일기장인 싸이월드의 부활에서 엿볼 수 있듯 당대 콘텐츠의 리메이크 소식이 자주 들리는 요즘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90년대를 주름잡던 도트 그래픽은 이제 픽셀 아트(Pixel art)라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 각광받고 있는데요. 점과 점이 만나 완성되는 선처럼, 픽셀을 다양한 색으로 채우며 새로운 이미지를 완성하는 픽셀 아트는 이제 그래픽의 정교함을 넘어 개개인의 개성과 이야기를 담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컴퓨터 속 가장 작은 점 ‘픽셀’에 이야기와 세상을 그려 나가는 픽셀 아티스트 ‘주재범’ 작가님과 함께 픽셀 속에 담긴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최근 어떻게 지내셨나요?
얼마 전 큰 캔버스에 픽셀 아트를 주제로 페인팅을 진행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랜만의 수작업이었네요. (웃음) 이번 작품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한 동료들과 함께 ‘Complex Seoul’ 전시회에 출품했습니다. 김동호 작가와 설동주 작가, 그리고 ‘Seoul Sticker Shop’의 이동훈 대표와 함께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이는 서울을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기획 전시회였는데, 오랜만에 동료 작가들과 함께 한 전시회라 감회가 새로웠죠.

뉴트로 감성에 푹 빠진 MZ 세대에게 ‘픽셀 아트’는 90년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픽셀 아트’라는 장르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예전에 애니메이터로 활동했어요. 당시 픽셀은 애니메이션을 표현하는 기법 중 하나였는데요. 디지털 이미지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바로 ‘픽셀’입니다. 컴퓨터 속 작은 점인 ‘픽셀’로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죠.
본격적인 픽셀 아트 작업은 포토샵의 빈 레이어를 보고 영감을 얻어 픽셀로 초상화를 그리는 P.P.P.(픽셀 포트레이트 프로젝트)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해요. 또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작년 11월에는 픽셀 초상화를 온라인 비대면으로 진행했어요. P.P.P.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보내주시는 즐거운 반응에 새로운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작업을 위한 긍정적인 에너지원이 되고 있습니다.
P.P.P.(픽셀 포트레이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국적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인연이 닿았어요. 특히 작업 초기에 프랑스 작가와 협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Mo²’라는 활동명으로 파리 공공시설을 기반으로 설치 예술을 선보이는 아티스트였는데, 파리의 지하철 환풍기에 바람개비를 설치해 제 작품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죠. 영상 속 모습처럼 제 작품이 디지털 이미지 속 픽셀이 아닌 바람개비로 표현된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졌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vjtsGzLqfrI
출처: Mo² paris 유튜브
구글, 인스타그램, 디올 등 다양한 브랜드 협업 중에서도 특히 나이키, 박재범과의 콜라보레이션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마다 소통 방식이나 진행 과정이 천차만별이라 작업마다 늘 신선해서 그런지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네요. 말씀하신 나이키와 콜라보레이션은 미국 본사에서 직접 연락이 왔어요. 하지만 작업 중에도 프로젝트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아서 제 작업물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죠.
출처: 주재범 작가님 비메오
나중에 제가 작업한 픽셀 애니메이션이 ‘RUN IT’의 뮤직 비디오에 쓰였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뮤직 비디오에서 영상과 픽셀 애니메이션을 오가는 부분이 있는데요. 나이키가 상징하는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과 꿈을 쫓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박재범 씨의 싱글 앨범을 위한 픽셀 애니메이션 작업도 함께 하게 됐죠.
현실과 디지털 세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픽셀 아트 작품 활동을 보여주고 계신데요. 작가님께서 픽셀 아트 작품을 구상하실 때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고 어떻게 작품에서 표현하시나요?
저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에서 영감을 얻는 부분이 큰 것 같아요. ‘나’를 잘 아는 사람과 대화 속에서 또는 새롭게 알아가는 사람과 만남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떠오른 이미지를 포토샵 위 캔버스에 빠르게 표현하는 편입니다. 생활 속에서 얻은 영감을 추가하거나 평소에 좋아하는 가상 세계 같은 특정 장르로 작품 컨셉을 발전시키기도 하죠. 소재가 확실해지면 레이아웃을 잡아줍니다. 색이 있는 펜으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타블렛으로 배경과 사물 등 전체적인 조화를 생각하며 손을 빠르게 움직여 작업하는 편이에요. 애니메이션은 오랜 작업 경험 덕분인지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올 때가 있어요. 그때 표현하고자 하는 움직임과 분위기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픽셀이 디지털 아트의 최소 단위인 만큼,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정교한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 작업을 하실 때 어도비 제품을 사용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주재범 작가님께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제품이란?

제가 픽셀 아트 작업에 영감을 얻은 것이 어도비 포토샵(Adobe Photoshop)인 만큼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제품은 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죠. 무엇보다 제 픽셀 아트 작업의 근간이 되는 시작점 그 자체이기도 하고요. 픽셀 아트 뿐만 아니라 수작업을 진행할 때에도 스케치를 하거나 표현을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제 1의 툴입니다. 그 밖에 간단한 움직임은 포토샵에서 간단한 작업을 통해 GIF를 만들고 있어요.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한 움직임이나 효과는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를 활용해 작업하고 있습니다.
픽셀 아트를 이용한 다양한 실험을 해오셨는데요. 특히 360도 VR 작품은 다른 곳에서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었습니다. 픽셀 아트로 만든 360도 VR 작품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또 어떤 작업 과정을 거치는 지 궁금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cPslv1W41Q
출처: 주재범 작가님 유튜브
엄청난 작품이라고 말씀해주셔서 부끄럽네요. (웃음) 저는 항상 픽셀로 이루어진 ‘실재’하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접한 360도 VR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게 되었죠. 위 작품은 실사 사진을 토대로 먼저 포토샵에서 픽셀 아트 작업을 한 후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Adobe Premiere Pro)에서 360도 VR 효과를 적용해서 완성했어요. 제가 적용한 효과는 VR Plane to Sphere로 프리미어 프로 내 효과(Effects) 메뉴 중 몰입감 있는 비디오 (Immersive Video)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60도 VR작업 덕에 기존 픽셀 아트 작업에는 없는 공간감을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양한 픽셀 아트 작업을 하시면서 원칙처럼 지키려고 하시는 게 있나요?
제가 즐기는 걸 표현하는 데 더 의미를 두려고 해요. 스포츠 특히 축구와 관련된 아트 워크는 개인 작업이든 일이든 간에 마니아라면 더욱 즐길 수 있는 디테일이 숨어있습니다. 하하. 제가 숨겨 놓은 디테일을 찾아보면서 제 작품을 재미있게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나요?
이건 비밀인데 제가 지금 새로운 장르와 작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살짝 힌트를 드리자면 제가 음식을…특히 면 요리를 정말 좋아해요. (웃음)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지만 좋아하는 음식과 사람이라는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요즘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을 수 있어서 즐겁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통해서 픽셀 아티스트를 꿈꾸는 분들이 있을 텐데요. 주재범 작가님과 같은 픽셀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면 될까요?
부끄럽지만 답을 해보자면 꾸준히 활동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색을 찾기 위해 다양하게 시도하는 자세가 기본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스스로가 즐길 수 있다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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