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리더에 묻다] 21세기 풍속도로 세상과 소통하다 – 한국화가 김현정 작가

내숭 시리즈 작품 앞에서 웃으며 인터뷰하는 김현정 작가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그림은 인물과 사물, 풍경을 담는 것 이상으로 역사와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도구입니다. 이는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작가와 작품의 공통점과도 일맥상통하는데요.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풍자와 해학적으로 화폭에 그리는 화가가 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 풍속도’로 불리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극찬 받고 있는 한국화가 김현정 작가님입니다. 그녀의 대표작 ‘내숭 시리즈’로 2016년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단독 개인전을 연 최연소 한국인이 되기도 했는데요. ‘소셜 드로잉’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김현정 작가님의 이야기,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코로나19로 전시와 대외활동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어요. 와인에 빈티지가 있는 것처럼 제 작품에도 코로나 빈티지가 생길 것 같아요. 폭발적인 작업량 덕분에요. (웃음) 진행 중인 작품은 ‘명화 패러디’와 ‘결혼’, ‘한복’ 이렇게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한국 문화를 표현하는 작품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로 한국화 재료를 사용하지만 유화나 3D 프린팅, 페이퍼 컷팅 아트, 아이패드 드로잉, 영상, 설치 예술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또 언택트 시대에 맞춰 유튜브에 작품 제작 과정을 공개하고 있으니 궁금하시다면 제 유튜브 채널에 놀러 오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CtcSJSvvXQ0

김현정 작가님 유튜브 채널

작가님의 소셜 미디어에 방문해 보니 참신한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특히 보다 보면 피식하고 웃게 되는 해학적인 작품들이 많던데 작가님만의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초기에 작업을 할 때는 아이디어가 샘 솟았어요. 손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답니다. (웃음) 그런데 어느 날 화판을 바라보는 데 갑자기 너무 커 보이는 거예요. 큰 화판에 무엇을 그릴지 막막해지니 선뜻 붓을 들기를 주저하게 되었죠. 그때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후 책은 물론 뉴스나 음악, 무용, 연극 등 다양한 문화를 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영감은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명상과 반신욕 시간에 많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주로 일상을 조금 비틀어 생각하고 바라볼 때 아이디어가 더 잘 나오는 것 같습니다.

떠오른 아이디어들은 실제 작품을 그리기 전에 어도비 포토샵(Adobe Photoshop)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를 활용해 소품 구성과 위치, 색의 조화를 미리 확인하고 있어요.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Adobe Creative Cloud) 덕분에 작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스케치를 먼저 진행해볼 수 있어서 작업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었답니다.

일상을 비틀어 생각하고 바라볼 때 영감을 얻으신다는 말씀을 되새겨보니 ‘내숭 시리즈’가 더 새롭게 느껴집니다. ‘21세기 신풍속도’라 불리는 ‘내숭 시리즈’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내숭’이 일종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요. 독일 철학자 헤겔(Hegel)은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인정 투쟁’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저는 내숭이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 투쟁이자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정 투쟁이 표현된 내숭 시리즈 중 <내숭: 아차> 작품은 제가 대학생 때 처음 그린 작품입니다.

김현정 작가의 초기 작품 화병 시리즈

‘화병[화ː뼝]’ / 출처: 김현정 작가님

그 때 마음이 조금 아팠던 터라 저를 치유하기 위해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그린 그림은 사람의 형태가 아니라 제 마음을 투영하기 위해서 화병을 그렸습니다. 마음 속의 화병이라는 의미에서 제목도 <화병[화ː뼝]>이라고 지었어요. 꽃을 꽂는 병이 아닌 ‘울화병’의 의미를 담았죠.

2013년 첫 개인전 <내숭이야기>를 시작으로 2016년 <내숭 놀이공원>, 30대를 맞이하신 김현정 작가님의 2019년 개인전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까지. 매번 새로운 ‘내숭 시리즈’를 만나고 있는데요. 각 시리즈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명품 가방 속 커피가 쏟아지기 일보 직전, 한복을 입은 여성이 라면을 급하게 먹고 있다

‘내숭: 아차’(我差)’ / 출처: 김현정 작가님

같은 이름과 컨셉으로 이어지는 시리즈이지만 시간이 흐른 만큼 작품 속 이야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첫 개인전인 <내숭이야기>는 겉과 속이 다르게 내숭을 떠는 사람들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면, 2016년 <내숭 놀이공원>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에서 시작되는 내숭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된 작품이에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더 이상 내숭을 떨 필요가 없는 순간 진정 나답고 자유로운 모습을 담았습니다.

미혼인 여성과 기혼 여성을 명화 천지창조에 빗대어 그린 작품

‘결혼:천지차이’ / 출처: 김현정 작가님

가장 최근 열린 개인전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는 “나이가 찼으니 결혼을 해야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담았습니다. 20대 후반부터 결혼할 ‘때’가 왔다고 하는게 이상하다고 느꼈거든요. 보통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그려왔는데, 아직 미혼이라 결혼에 대해 그리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혼자 분들의 의견을 취합해 마침내 새로운 ‘내숭 시리즈’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좌)가사일과 육아를 멋지게 해내는 엄마의 모습을 명화 나폴레옹의 자화상에 빗댄 작품/(우)가사일에 지쳐 쓰러진 엄마와 결혼식을 올리는 딸의 모습을 명화 피에타에 빗댄 작품

(좌)’결혼:육아전쟁’, (우)‘결혼:피로타’ / 출처: 김현정 작가님

작품을 표현하는 방법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국 전통 기법인 선과 요철법 위주로 표현을 하다가 최근 명암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또 이전에는 배경을 여백으로 남겨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했다면, 요즘은 배경도 다양한 방식을 접목해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최근 김현정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계신 것 같아요. 브랜드 콜라보레이션부터 디지털 기술로 작품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등 여러 가지로요. 이런 새로운 도전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을 위해 작품을 기획한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좋아하고 갖고 싶은 물건을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요. 제 작품을 보시고 해당 브랜드에서 먼저 콜라보레이션을 제안주신 적이 있어요. 이처럼 새로운 도전은 제가 꾸준히 해오던 일을 조금씩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싹트는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인 만큼 저에게 에너지를 주기도 하고요. 타성에 젖어 편한 그림만 그리고 싶지 않거든요. 워낙 호기심도 많은 편이고 하고 싶은 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서요. (웃음) 새로운 도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호기심 그리고 창작 욕구인 것 같아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활발한 작업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가 많은데요. 소셜 미디어를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고 계신 김현정 작가님에게 ‘소셜 미디어’란?

많은 분들과 소셜 미디어로 소통을 하면서 작품에 대한 공감과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었는데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질문을 던지곤 해요. ‘저는 이래요. 혹시 당신도 그런가요?’ 하고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메시지를 유쾌하게 던지면서 작품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고 싶습니다. 제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서 시작한 작품을 통해서 다른 분들도 치유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코로나 19로 지쳐 웃음을 보기 어려워지는 요즘 제 그림을 보실 때만큼은 ‘너무 웃겨, 발칙해’하고 생각해주신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소통’이라는 소셜 미디어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작가님께서 ‘소셜 드로잉’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사연을 받아 라디오를 진행하는 것처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연이나 아이디어를 듣고 작품을 구상해보면 어떨까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진행하는 과정부터 작품 해석까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의견을 반영하면서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데요. 온라인 집단 지성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한다는 의미에서 ‘소셜 드로잉’이라고 제가 조어해봤습니다. (웃음)

내일부터 시작하는 다이어트를 위해 오늘까지는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냉장고 속 음식을 마구 꺼내 먹는 여성의 모습

‘새해 다짐(feat. 내일부터)’ / 출처: 김현정 작가님

소셜 드로잉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새해 다짐(feat. 내일부터)’ 예요. 연말에 소셜 미디어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새해 다짐을 적어보자는 이벤트를 열었어요. 많은 분들이 새해 다짐 중 공통적으로 적으시는 것이 있더라고요. 바로 ‘다이어트’였습니다. 모두가 소망하는 일이라니! 바로 이게 21세기를 표현하는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작품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냉장고에는 다이어트 관련 식재료가 가득한데 먹기 싫어서 ‘오늘까지만 먹고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소셜 드로잉’을 개척하고 완성하고 싶나요?

소셜 드로잉은 우주처럼 모습을 특정할 수 없어요. 그 크기도 가늠할 수 없고요. 고정관념을 깨는 게 현대 예술인데, 제가 배워온 교육과정에서는 이론으로는 깨라고 하지만 실전에서는 그 경계를 넘으면 이상하게 바라보거든요. 저도 8살때부터 그런 교육을 받다 보니 깨는 게 어렵더라고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소셜 드로잉’에 대해 “대중과 작가가 함께 의견을 나누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는데요. 지금은 다소 막연하지만 소셜 드로잉을 AI기술이나 빅데이터를 적용하여 작업해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또 표현하는 방법은 변하더라도 소셜 드로잉이라는 본질은 벗어나지 않도록 앞으로도 계속 소통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발전으로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도비가 말하는 ‘모두를 위한 크리에이티브’처럼 많은 사람들이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하고 의견을 주고받는데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크리에이티브 영역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게 될까요?

최근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저는 이러한 현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어려움 없이 나누는 과정에서 새로운 발전이 시작되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어도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모두를 위한 크리에이티브’를 위해 앞장서 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창조 정신을 기반으로 한 크리에이티브 영역이라 하더라고요. 지금보다도 미래에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이 더 주목받고 빠르게 발전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는 문화를 넘어 개개인이 갖고 있는 생각을 공유하고 교류하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시대가 열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현정 작가님처럼 소셜 미디어에서 팬들과 소통하면 작품 활동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소셜 미디어는 홍보 보다 ‘만남의 장’ 같은 공간이에요. 언텍트 시대에도 많은 분들과 작품으로 소통할 수 있다니! 국가적 재난 상황 속에서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시를 이어갈 수 있고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소셜 미디어를 운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소통’과 ‘꾸준함’ 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소통을 통해 작품을 함께 완성해 나간다면 현 시대를 반영하는 멋진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컬러 팔레트와 동양화 붓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작가님의 모습

출처: 김현정 작가님

앞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고, 또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나요?

예술계에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예술에 큰 빚을 졌어요.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치유 받은 작품 활동으로 보답하고 싶어요. 특히 미술인의 직업 인지도 향상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아이일 때 “그림 그리는 게 좋아요”라고 하면 “미술은 취미로 해”라고 말하는 시대였거든요.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택했을 뿐인데 ‘예술가는 배고프다’라고 여기는 지금 시대의 편견을 깨고 싶어요. 방법은 다양하게 접근해보고 싶고요. (웃음)

저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고 선보인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어요.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편해지거나 쉬워진다면 타성에 젖은 아티스트라 생각하거든요. 늘 새롭고 진정성 있게 도전하는 작가가 되길 희망합니다.

김현정 작가님 작품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