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편집을 묻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절묘한 교차점을 짚어내는 뮤직비디오 거장 - 범진 감독
한편의 광고를 보는 듯한 영상미와 특유의 색감, 몽환적인 연출을 통해 보는 이를 홀리는 듯한 뮤직비디오로 전세계 K-POP팬을 열광시킨 범진 감독님을 인터뷰했습니다. VM 프로젝트 아키텍쳐(VM Project Architecture)를 설립한 후 수많은 유명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데요. 본인은 아직 햇병아리라고 손사레치지만 거장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 범진 감독님이 생각하는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영상의 세계를 함께 만나 보실까요?
출처 : VM 프로젝트 아키텍쳐
안녕하세요, 범진 감독님!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최근 어떤 것에 집중하고 계신지 근황과 함께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VM 프로젝트 아키텍쳐의 Head Director와 Executive Producer를 겸하고 있는 범진 감독이라고 합니다. 저희 팀은 문화 전반에 걸쳐 다큐멘터리, 광고, 뮤직비디오, 타이포그래피, 사진 등 눈으로 비춰지는 시각적인 모든 작업들을 기반으로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 뮤지션의 앨범에 맞추어 장/단편영화를 기획, 제작하고 있습니다.
출처 : VM 프로젝트 아키텍쳐
한 인터뷰를 통해 뮤직비디오 감독 이전에 디자이너로 활동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픽 디자인뿐만 아니라 포토그래퍼, 머천다이징 등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을 해오셨는데요. 감독님의 이력이 광고, 뮤직비디오 등 영상제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유년시절부터 만화/영화에 빠져들어 10대 중 후반 미술회화와 애니메이션을 공부하였습니다. 군복무 이후 그지식들을 바탕으로 그래픽디자인과 사진을 공부하였고 짧게나마 미술지의 기자생활을 하며 저널리즘을 경험했습니다. 광고와 뮤직비디오분야로 작업영역이 옮겨 가긴 했지만 여전히 스크린에 보이는 화면은 미술 학도시절의 캔버스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고 느낍니다.
카메라라는 붓을 통해 그려내는 레이아웃에 대한 이해와 모니터에 투사된 팔레트들을 이용해 회화적인 색채를 작업하는 방식은 손에 쥔 툴과 작업환경만 달라졌을 뿐, 맥락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다만 평면적이고 정적인 작업을 하던 그때와 달리 현재는 다각도에서 비춰진 동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범진 감독님 작업 시퀀스 (출처 : VM 프로젝트 아키텍쳐)
과거 아디다스나 데상트, 르꼬끄, 휠라 등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를 제작하시기도 했는데요. 편집과정에서 광고 제작과 뮤직비디오 제작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 두 콘텐츠는 의도에서부터 다음과 같은 차이를 보입니다. 광고가 특정 브랜딩 혹은 상품을 돋보이는데 주목한다면 뮤직비디오는 순수히 음악이 가진 매력과 가사를 통한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둔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한 제작방식은 기획부터 결을 달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광고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죠. 매체가 노출되는 플랫폼(TV매체, 빌보드 혹은 유기 디스플레이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제한된 시간 안에 광고의 목적을 시각적으로 전달해야 해요. 짧게는 10초에서 15초, 길게는 1분 내외의 길이를 베이스로 합니다.
뮤직비디오는 광고와 달리 시간이 제한되어 있지는 않지만 시각적인 요소가 아닌 청각적인 요소를 베이스로 합니다. 광고가 시각적인 작업을 완성하고 음악이 이후에 작업되는 것이라면 뮤직비디오는 반대로 출발합니다. 그렇기에 디렉터는 본래 가진 음악의 구조를 먼저 파악해야 하며 그 매력적인 음악과 매칭되어 함께 어우러질 비주얼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물론 원곡의 플레이타임이 시간적 제한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 오프닝을 만들기도 혹은 중간에 음악을 끊고 시네마적인 요소를 넣을 수도 있죠.
이런 차이로 인해 광고와 뮤직비디오의 편집과정은 제작의도에 따라 방식이 비슷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완전히 뒤집어지기도 합니다.
출처 : VM 프로젝트 아키텍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영상미와 색감으로 많은 팬분들의 지지를 받고 계신데요. 한편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 위해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영감을 뮤직비디오에 담기 위해서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Adobe Creative Cloud)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영감이 특정행위, 혹은 어느 매체에서 오진 않는다고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 행위 혹은 광고나 사진 등의 시각적인 콘텐츠에서 영감을 받을 순 있겠지만 동일선상에 존재하는 매체를 통한 1차원적인 접근은 디렉터로 하여금 유사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오히려 소설이나 수필 등의 문자를 읽으며 온전히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그림, 여행이나 산책을 하며 만난 자연현상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각적 후각적 촉각적인 경험들, 홀로 차를 몰며 라디오를 통해서 들었던 음악, 지난밤에 꾸었던 꿈에서 보았던 것들 이런 흔한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아이디어 자체나 혹은 아이디어로 발전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자주 메모하고 기억할 수 있게 저장하는 행위를 습관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중학생시절부터 게임보다 더 가지고 놀던 어도비 포토샵(Adobe Photoshop),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작업할 때 사용했던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 사진과 늘 함께 했던 어도비 라이트룸(Adobe Lightroom), 지금은 단짝이 된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Adobe Premiere Pro)까지 어도비는 제게 가장 친숙한 툴입니다
출처 : VM 프로젝트 아키텍쳐
범진 감독님의 뮤직비디오는 빠른 퍼포먼스뿐 아니라 작품 속에 숨겨놓은 의미심장한 컷들로 아이돌 팬덤에게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감독님께서 개인적으로 이러한 요소를 가장 잘 담았다고 생각하시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함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레드벨벳의 <덤덤(DumbDumb)>과 아이콘의 <아임오케이(I’m OK)>가 생각나네요. 레드벨벳의 <덤덤>은 연출가로서 그 시대까지 이어온 ‘아이돌’이라는 포지션이 가진 편협한 시각과 통상적인 관념을 뒤집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산업적인 장치 등의 요소를 통해 아이돌이란 정체성을 과감히 내비치고 복사(copy)와 붙여넣기(paste)를 시각화한 미장센을 시각화함으로써 <덤덤(DumbDumb)>이란 노래 제목처럼 아이돌을 바라보는 시각을 비틀고 싶었죠.
IKON의 <아임오케이(I’m OK)>는 이별을 겪은 이의 ‘괜찮다’는 말로 주인공이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게 해 사랑의 아픔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사고 난 차량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모습과 타인들에게서 멀어지려 높게 쌓아 올린 의자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주인공, 수많은 TV와 캠코더에 둘러싸여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 없고 재활용더미에서 몸을 일으키고 조난당한 것처럼 낙하산이 펼쳐져 있는 미장센 등을 통해 이별이 가진 아픈 느낌을 직/간접적으로 담아내려 했죠.
출처 : VM 프로젝트 아키텍쳐
뮤직비디오에서 아름다운 영상미와 색감을 표현하는 감독님만의 비법이나 노하우가 있나요? 또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시면서 원칙처럼 지키려고 하시는 게 있다면요?
이 순간에도 빠르게 제작되고 쉼없이 소비되어가는 수많은 비주얼 콘텐츠들이 점점 복잡한 구조를 띄고 여러 매체를 통해 흘러갑니다만… 이런 시대에 나름대로 지키려는 것이 있다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자체로 오래 바라보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뷰파인더 안에 펼쳐진 미술적 배경들, 조명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빛과 텍스처, 피사체를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비로소 하나가 될 때 영상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복잡한 트렌지션과 화려한 이펙트들은 부수적인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초안이 되는 스토리보드에 항상 중점을 두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그 방식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의도와 맥락에 맞는 상황연출과 그에 맞는 톤, 카메라워크, 미술을 준비합니다. 컴퓨터로 옮겨와 후반작업 하기 이전 머릿속에 그려낸 그림을 최대한 현장에서 구현하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아날로그 필름카메라를 각 씬(scene)마다 한 장 이상 촬영하곤 합니다. 이 필름들은 추후에 색감을 표현할 때 저의 작업 기초가 됩니다.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뮤직비디오 총괄 기획, 연출, 촬영 지휘, 편집, 컬러 그레이딩까지 모두 담당하고 계신다고 알고 있는데요. 굉장히 다양하고 많은 작업들이 예상됩니다. 영상편집 과정에서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의 어떤 툴들이 작업 효율성 향상과 작업시간 단축 등의 도움을 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어떤 작품을 제작하실 때 이런 경험을 하셨는지 그리고 해당 작품은 어떤 작품인지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어도비 포토샵과 어도비 애크로뱃(Adobe Acrobat)을 통해 기획안을 완성합니다. 이후 영상에 토대가 되는 애니매틱 비디오를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 기반으로 제작하고 이 애니매틱 영상은 해당 작업이 종료될 때까지 작업의 밑그림으로 늘 함께하게 됩니다. 촬영 후 프리미어 프로를 통해 컷을 잘라내고 붙이는 작업을 진행하고, 여러 스틸 이미지를 캡처해 어도비 라이트룸으로 톤을 보정합니다. 작업 마무리 단계에선 타이틀 디자인이나 크레딧 디자인 등이 진행되는데, 이때는 다시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합니다. 이 모든 과정들은 프리미어 프로를 중심으로 다이내믹 링크를 통해 연결되어 작업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 방식으로 작업된 비디오들은 아이유의<BBIBBI>, 식케이의<Tellya, Darling>등이 있습니다.
출처 : VM 프로젝트 아키텍쳐
최근 디지털 분야에서 MZ 세대들의 활약이 놀라운데요. 특히 영상에 친숙하기 때문인지 영상 편집에 툴이나 비디오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기능을 활용해 쇼트 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영상 분야에 관심이 높은 것 같아요. 이러한 추세를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체감하시는 지, 앞으로 영상 콘텐츠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될 시기에 누구나 포토그래퍼로 불리던 시절처럼, 영상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기능들을 통해 단순히 손에 들린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를 이용해 영상을 만드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프로페셔널이란 직함을 달고 있다면 더 많은 상상을 해야 하고, 늘 해오던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제한이 없는 시각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죠. 기술의 발전이 어느 때보다 빠른 만큼, 가늠하긴 힘들지만 앞으로는 제작자와 시청자가 유기적으로 콘텐츠를 주고받게 되는 ‘인터랙티브 에디팅’이 가능한 시대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트렌드가 아니라 이제 주류가 된 영상 콘텐츠가 가진 잠재력은 무궁무진한데요. 앞으로 감독님께서는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나요?
기회가 된다면 위 질문의 답처럼 제작자와 시청자가 시각과 생각을 주고받는 콘텐츠를 제작해 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제작된 신과 컷들이 웹 또는 기타 플랫폼에 배치되어 있다면 시청자들이 자유롭게 그것들 유기적으로 조합함으로써 숨겨진 결말을 혹은 비하인드 신을 열람할 수 있게 한다던가 말이죠.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할 범진 감독님의 다음 행보는?
VM 프로젝트 아키텍처가 만들어진 지 올해로 12년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제작자들 틈새에서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을 작업해 오는 동안 경험하고 느꼈던 작업들을, 올 가을쯤에 오프라인의 작은 공간에서 그간의 작업들을 정리하고 짧게나마 시사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장편에 대한 내용도 함께 선보이려 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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